눈요기? 중력 뚫은 인간승리!… 기술성 따봉, 예술성 따따봉

2022-06-21

폴스포츠를 아시나요


미국의 ‘폴댄스’가 스포츠로 진화

이전까진 “클럽쇼·퇴폐적” 평가돼

국제단체 설립, 채점규정 등 생겨

거꾸로 매달리는 ‘선원’ 최고 기술


2012년 첫 국제대회 참가자 43명

인기 급상승 속 2021년 1724명 경쟁

공중후프 ‘에어리얼’ 등 종목 다양화

컬링처럼… 정식 종목 채택 기대감

이미주(33)가 지난 4월20일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국폴스포츠선수권 대회 폴스포츠 종목에서 ‘힙 홀드 스플리트1’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폴스포츠협회 제공

지난 4월30일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국폴스포츠선수권 대회. 이미주(33)가 무대에 세워진 4m 높이 막대(폴)를 잡고 성큼성큼 천장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떨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은 높이였지만 이미주는 폴에 몸을 끼우더니 빙글빙글 돌며 공중에서 아찔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다 손이 아닌 허벅지를 이용해 폴을 잡아 공중에 매달려 있다가 무릎을 굽히더니 미끄러지듯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다. ‘이러다 부딪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험한 순간, 이미주가 멈춰 섰다. 현장을 찾은 관객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쏟아졌다. 이미주는 다시 폴을 잡고 중력을 이겨낸 듯 화려한 몸짓을 선보인 뒤 폴스포츠 경기를 마쳤고,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날 연기로 시니어 부문 1위에 오른 이미주는 오는 10월27일부터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폴스포츠 세계선수권대회 진출권을 따냈다.


폴스포츠는 1920년 미국에서 시작된 폴댄스가 스포츠로 진화한 종목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폴댄스가 스포츠로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를 ‘폴스포츠’로 명명해 발전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 캠페인은 2009년 국제폴스포츠연맹(IPSF) 설립으로 이어졌다.


17일 한국폴스포츠협회(KPSA)에 따르면 IPSF는 설립 이후 국제체조연맹(FIG) 도움을 받아 채점방식과 운영규정 등 구체적인 경기방식을 결정, 폴댄스와 달리 명확한 채점 규정을 갖고 스포츠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66페이지로 구성된 폴스포츠 규정집에는 동작과 동작에 따른 점수, 정확한 자세 등에 대해 기술돼 있다. 예컨대 가장 어려운 기술로 평가받는 ‘선원’(Sailor) 자세는 ‘몸이 뻗은 자세로 거꾸로 매달려 있으면서 폴에는 삼두근(팔 뒤쪽 근육)과 양쪽 발목, 한쪽 정강이와 종아리만 닿아 있어야 하고, 이 상태에서 720도를 회전하면서 2초 이상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선원 자세 배점은 1점이다. 만약 선원 자세 중 폴에 규정되지 않은 선수 신체가 닿아 있다거나, 회전이 부족할 경우 0.1점씩 감점을 받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전까지 폴댄스 일부로 취급받던 폴스포츠를 스포츠로 보는 시각은 드물었다. 서부영화나 클럽문화에 등장하는 폴댄스는 하나의 쇼로 각인시켰고 일각에서는 퇴폐적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여러 요소가 정의되면서 폴스포츠는 빠르게 발전했다. 폴스포츠 첫 국제대회인 2012 세계선수권대회에는 전 세계 14개국에서 43명이 참가했지만 지난해 국제대회에서는 54개국에서 1724명이 경쟁을 펼쳤을 정도로 인기와 규모가 커졌다. IPSF는 세계반도핑기구(WADA)와 세계생활체육연맹(TAFISA) 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최상위 산하기관인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에 가입했다. 현재 전 세계 60개 국가에 폴스포츠 협회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월 1회 정기회의를 열어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는 등 폴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폴스포츠는 크게 폴과 에어리얼로 나뉜다. 여기서 폴은 다시 폴스포츠와 아티스틱폴, 울트라폴로 구분된다. 폴스포츠는 피겨에서 쇼트프로그램과 비슷하게 가장 정적이다. 이 종목에 출전한 선수는 3분50초에서 4분간 예고한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 선수는 고정된 폴과 360도 회전하는 폴에서 6대 4 수준 비율로 연기를 펼치며 기량을 뽐내게 된다. 경기에는 하얀색 조명이 쓰이며 가사가 있는 배경음악도 사용이 금지된다. 아티스틱폴은 폴스포츠에 예술을 더한 종목으로 폴 사용 규정과 음악, 배경 등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울트라폴은 브레이크댄스 베틀처럼 두 선수가 30초씩 배경음악에 맞춰 기술을 선보이면서 평가받는 종목이다.

손다은(15)이 지난 4월20일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국폴스포츠선수권 대회 에어리얼후프 종목에 출전해 고난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폴스포츠협회 제공

에어리얼은 공중에 매달린 후프에서 연기하는 종목으로 크게 에어리얼후프와 아티스틱후프로 나뉜다. 폴스포츠는 폴에서 연기하지만 에어리얼 종목은 후프를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정주진 KPSA 사무국장은 “IOC가 ‘더 다양한 서브 스포츠가 있다면 정식종목 채택에 유리하다’고 조언했고, 이에 따라 폴스포츠에 에어리얼 분야가 새롭게 추가됐다”며 “IPSF는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위해 플라잉폴 등 다양한 종목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라잉폴은 땅에 고정된 막대가 아닌, 천장에 매달린 폴에서 연기하는 종목이다. 폴스포츠 열풍은 우리나라 협회 설립에도 영향을 미쳤다. KPSA는 2016년 10월 창립됐고 2018년 태릉선수촌에서 첫 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매년 국가대표선발전을 겸한 국내 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정 사무국장은 “KPSA는 IPSF와 교섭권을 가진 단체”라며 “국내 폴스포츠가 제대로 소개된 지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기반이 탄탄하지 않지만 컬링처럼 국제적인 인기에 힘입어 정식종목에 채택되는 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제공 세계일보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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